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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 『한(僩)』

‘북룡(北龍)의 역린에 망징패조(亡徵敗兆)가 흐드러졌다.’

 2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북쪽의 제국.


 사계절이 나뉘나 유독 겨울이 혹독하고 길어 예로부터 ‘한(寒, 추위)의 제국’이라 불리기도 했다. 동토가 대부분인 제국의 땅은 토질이 척박하고 산이 주를 이뤄 논농사보단 밭농사와 화전이 성행한다. 한(僩)을 둘러싸고 있는 산맥은 품고 있는 광물 자원이 많지 않으나, 산맥의 산세가 워낙 험준하고 세차 외부의 침략을 막는 철옹성으로 제 역할을 다했다.


 건국 초기의 한은 그들의 지형을 전략의 주축으로 삼아 비옥한 땅과 자원을 얻기 위해 활발한 침략 활동을 보였으나, 어느 순간부터 정복 정책을 중단하고 그들의 땅에 정체되었다. 제국의 황실은 대책 없이 불려놓은 영토를 다 관리하지 못해, 수도 밖의 황량한 대지를 방치하고 있다. 때문에 수도에서 멀어질수록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이 이어진다.


 문화, 생활, 예술 등 민생의 삶과 관련된 무형의 것들은 침략 활동 이후로 발전 없이 고착되어 쇠락의 길을 내달리고 있으며, 국가의 정책 역시 과거에 고인 채 쇄국을 지지하며 불필요한 병력 유지와 효용 없는 무기 생산에 막대한 세금을 쏟아붓고 있다.
 
 황실의 끝없는 폭정과 사치는 날이 갈수록 극에 달하고, 여지없는 망조가 제국 곳곳에 똬리를 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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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

 건국 이래 귀족을 중심으로 한 보수적 정치 성향을 유지해 왔으나 현 황제 즉위 후 십여 년간은 진보파가 권력을 잡았다. 하나 7년 전, 황후가 황실을 장악한 이후로 국면은 최악으로 치닫는다.
황후는 그에게 반하는 이들을 끝없이 학살하고 힘없는 백성을 징용하여 제 권세를 공고히 했다. 이에 억만지중(億萬之衆)이 공포와 비탄에 떨게 되었다. 


 백성들은 특히 ‘불’을 보면 경기를 일으키는데, 황후의 수족이 된 황실군이 불을 휘둘러 그들을 위협했기 때문이다. 
황실에 직접적으로 소속된 군인은 모두 금빛 갑옷을 입고, 개중에 황후를 따르는 자들은 ‘황후군’이라는 이름으로 가슴에 핏빛 꽃무릇 문양을 새겨 저들의 주인을 과시한다. 그들이 휩쓴 곳엔 어김없이 불에 사윈 잿더미가 쌓이고, 생살이 탄 누린내가 코를 찌른다. 한때 타국을 정복하기 위해 쓰였던 불이 공포정치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가 된 것이다.
 
 그러나 백성들의 이런 환란에도 불구하고, 황실의 사치는 사시사철 끊이지 않는다. 아무리 혹독한 겨울이 찾아와도 황실의 궁은 실오라기 하나 걸칠 필요 없이 따뜻하다. 무수한 희생을 온실 삼아, 추위에 약한 꽃무릇이 궁궐 전체를 빨갛게 장식한다.
 
 현 황제는 남자이나 황위 계승은 성별을 따르지 않는다. 직계 후손은 성별에 상관없이 모두 ‘총사(冢嗣)’로 칭하며, 제국 전반에 성차별적 사상은 극히 드물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노예제는 없으나 황족과 귀족에 비하여 평민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다. 현재 제국 전체의 인구수는 제대로 파악되지 않은 상태이며, 직계 황족의 수는 양손에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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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제국 『한』의 수도, ‘대서(垈栖)’

‘전쟁 중 휴식을 취하는 터’라는 의미지만, 백성들에게는 이름의 의미가 잊힌 지 오래다.

 국경 지대와 달리 마을이 자리 잡고는 있으나 가옥이나 터가 불에 탄 흔적이 많으며, 저잣거리에서는 빈민의 찌든 내가, 행인의 얼굴에는 궁핍만이 비쳐 수도치고는 황폐하기 그지없다.

 수도 정중앙에는 넓고 화려한 궁이 우뚝 서 있으나 높고 가파른 담벼락으로 둘러싸여 외부와의 경계가 뚜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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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란군

 

 반란을 시도한 세력은 여럿 있었으나 매번 성과를 이루지 못했다. 3년 전 대대적으로 이루어진 백성 학살을 기점으로 그 기세가 한풀 꺾였으나, 금년 들어 한 반란군이 두각을 드러낸다.

 정식 명칭은 없으나 붉은 도장 문양을 사용한단 이유로 암암리에 ‘인(印)’이라 불린다. 황후 세력을 향해 명백한 적대감을 보이고 있으며 반란군의 구성원을 꾸리는 데 지위의 고하를 따지지 않는다는 소문이 돌아, 신분의 구분 없이  인재를 등용하는 진보 파벌을 뒷배로 두고 있는 게 아니냐는 추측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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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단의 설정은 필독이 아닙니다. 세계관의 더 깊은 이해를 돕고자 작성되었음을 알립니다.

<문화>

※지역별 차이 존재.

· 식습관

 산짐승의 고기와 산에서 나는 나물, 밭농사로 지은 한랭지 뿌리채소를 주식으로 삼는다. 해산물은 황실에서도 보기 힘들 정도로 귀하다. 궁중과 귀족 가문에선 추운 겨울을 버티기 위해 달고 기름진, 열량 높은 음식이 발달했으나 가난한 백성들은 주로 봄가을 동안 건조시킨 건채소나 건육 등으로 겨울을 버틴다.

· 장식 문화

 화려한 외관을 중시하는 황실의 성격상 화려한 의복과 장식 공예가 발달했다. 천과 실을 이용한 수공예가 뛰어나며, 궁 곳곳에는 귀금속과 유리를 이용한 공예품이 눈에 띈다.

 특히 황궁의 의복은 제국의 모든 기술과 미의식의 집대성이라 할 정도로 화려함을 자랑하나, 예복과 갑옷, 생활복 할 것 없이 아름답기만 할 뿐 실용성은 떨어진다. 황족들이 입는 의복을 전담하는 궁내 부서가 존재하나 노동 강도가 높아 그만큼 많은 인력이 희생된다.

 한의 건축 기술은 아름다움을 강조하는 방향으로만 발전해 있으므로, 일반 백성을 위한 용도로는 적합하지 못하다.

· 예술

 건국 초기에는 민담이나 전설을 기반으로 한 소설이나, 남녀상열지사, 성군의 이야기를 재편집한 소설이 유행했으나 지금은 더 이상 유통되지 않는다.

 자본이 필요하지 않는 행위 예술이 주를 이루며, 노래보단 춤과 곡예, 구전으로 전수되는 연극이 발전해 있다.

 

· 관혼상제

· 성인식이 따로 존재하지는 않지만 일반적으로 약관의 나이가 되면 출가를 하고 성인으로서 대우를 받는다.

· 결혼을 의무로 삼지 않기에 혼인 나이대는 각양각색이나 귀족과 황족은 서른을 넘기기 전에 혼사를 치르는 편이다. 이때 혼인 상대의 성별은 이성이든 동성이든 상관없으며, 첫째로 난 아이는 성별을 떠나 장자의 권리와 의무를 갖는다.

· 장례는 화장(火葬)이 가장 일반적. 3일장을 지내지만 조문객을 받는 것은 첫날뿐이다. 나머지 이틀은 가족이나 가까운 친지만이 드나들 수 있다. 장례식장 내부에는 촛불을 가득 켜놓고 매시간 촛불을 조금씩 끄는데, 고인과의 영원한 작별을 예고하고 준비하는 의식의 일종이다.

 또한 한 제국의 사람들은 시신을 태우는 것이 사자(死者)를 위로하는 일이라 생각하여, 장례식의 마지막 날인 사흘째 자정에 시신을 발인한다. 마른 나무를 반상처럼 쌓아 그 위에 시신을 올린 뒤 불을 붙여 불씨가 완전히 잦아들 때까지 자리를 지키다, 시체를 태운 불씨가 사그라들기 직전에 풍등에 불을 옮겨붙여 하늘로 날려 보낸다. 산자는 이 풍등에 사자에게 바라는 염(念)을 담는다.

· 사자를 완전히 보내 주는 것이 예의라 생각하여 장례 이후 제사는 간소하게 치러진다. 제사상을 따로 차리진 않으며, 고인의 기일에 그를 추모하는 이들이 모여 음식을 나눠 먹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헤어진다. 황실에서는 선대의 신위를 모시는 사당이 있으나 관리를 할 뿐 따로 의례를 치르진 않는다.



<발전>

· 방한기술

 황실 한정으로 난방 기술이 발전되어 있다. 막대한 화력을 사용하기 때문에 대중적으로 보급되지는 못했으나, 백성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방설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눈이 잘 쌓이지 않도록 경사진 지붕을 짓거나, 건물 본채 주위로 짚을 이용한 외벽을 설치하거나, 문과 방바닥을 높게 설치하는 게 바로 백성들의 기술.

 백성들은 신발 바닥에 뾰족한 심을 심어 설피로 쓰거나 곳곳에 마른 흙을 쌓아 얼음길 위에 뿌리는 등, 눈에 대한 기본적인 대비를 틈틈이 해둔다.

 

· 과학과 의료

 오랜 쇄국 정치로 인하여 새로운 지식이 유입되지 않았다. 약초에 대한 정보가 방대하여 한의학이 발전해 있으나, 외과 기술은 전무하여 불의의 사고가 발생했을 시 대다수가 사망에 이른다.

 

· 화폐

 화폐 단위는 ‘냥’. 다만 백성들 사이에서는 물물거래가 더 애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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