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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상 및 반신은 킨트님(@haemji2)의 커미션입니다.)

6척을 훌쩍 넘어서는 건장한 체격을 가지고 있으나 소매 아래로 보이는 손목을 보면 그가 오랜 기간 병을 앓고 있는 환자라는 사실을 쉬이 알 수 있다. 초야를 뛰어다니며 바람 가는대로 흩날리던 흑발은 단정해졌고, 소년처럼 밝던 은안(銀眼)은 냉철하고 이지적인 빛을 띠고 가라앉아있다. 여전히 시원스레 웃는 낯이지만 상대를 절로 긴장시키는 분위기를 갖게 되었다. 건강 문제로 추위를 쉽게 타기때문에 궁내에서도 따뜻한 차림새를 하고 있는 일이 잦다. 팔목에는 차림새와 어울리지 않는 팔찌를 두 개 끼고 있는데, 하나는 귀족가의 어린아이가 낄 법한 화려한 옥팔찌를 성인용으로 재가공한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거친 실로 엮어낸 검은색 끈팔찌다. 손에는 늘상 쥘부채를 들고 다닌다.

엽 반하

葉蟠昰

29|여성|187cm / 71kg |대신

행동거지가 시원스럽고 처세에 능한|호탕한 웃음 뒤에 가려진 책사의 얼굴|

신중하고 조심스러우나 타협하지 않는|제 사람을 소중히 하나 배신을 용서하지 않는|

그러나 여전히

[행동거지가 시원스럽고 처세에 능한]

-본디 사람을 꺼리는 이는 아니었으나 한층 더 처세에 능해졌다. 웃음 뒤에 본심을 가리고 싫어하거나 경계하는 상대와도 거리낌없이 대화할 수 있는 인물이 되었으며, 정히 표정을 숨기고 싶거나 여지를 주고 싶지 않을 때는 늘 들고다니는 쥘부채로 얼굴을 가리기도 한다.

 

[호탕한 웃음 뒤에 가려진 책사의 얼굴]

-본래 가지고 있는 성정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시원스럽게 터뜨리는 웃음과 스스럼없는 행동은 여전하다. 호방하고 배포가 넓어 두루두루 뭇 사람들의 호감을 사나, 문득 상대를 긴장시키는 구석이 있다. 그 뒤에는 냉철하고 계산에 능해 공적인 일을 앞에 두었을 때는 일체의 동요도 보이지 않는 책사의 얼굴이 비쳐보인다.  

 

[신중하고 조심스러우나 타협하지 않는]

-진보파 대신으로 나선 이후 겪은 일련의 사건들로 인하여 자신이 어떤 위협에 노출되어 있는지 크게 깨닫고, 이후로 신중한 행보를 보인다. 한 걸음, 한 걸음 높은 계단을 오를 때마다 이같은 태도가 점점 심화되어, 큰 모험을 피하려는 경향이 보인다. 그러나 자신이 이루려는 뜻 앞에서 결코 타협하지 않으려는 대쪽같은 면모 또한 숨기지 않는다.

 

[제 사람을 소중히 하나 배신을 용서하지 않는]

-신분의 귀천을 따지지 않고 능력만 있다면 중용한다. 제 사람을 늘리기 위해 손을 뻗는 수고를 아끼지 않고, 한 번 제 아래로 들어오면 수단을 가리지 않고 아끼고 보호한다. 이는 공적인 관계나, 사적인 관계나 매한가지. 그러나 배신은 용서하지 않으며, 한 번 자신에게서 등을 돌린 이의 뒤로 활을 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러나 여전히]

-허나 성정을 뿌리부터 뜯어고칠 수는 없는 법. 가끔은 정과 의리, 인연과 관계를 소중히 하던 모습이 언뜻 수면 위로 떠오르기도 한다. 이에 반해야 할 때마다 술잔을 기울이며, 이때문에 의도치 않게 다소 술이 늘었다.

0.10년, 그 간의 엽.

-가주인 엽 반추가 후계자 엽 한동에게 자리를 물려주나 정작 가문의 실세는 장녀인 엽 반하가 맡고 있다. 장남인 한동은 제 누이를 무척 믿고 따른다는 소문이 파다하며, 약관의 나이로 대신의 자리에 오른 반하가 진보파로서의 세를 확고히함으로써 가문의 입장 또한 확실하게 정립된다. 아직 보수파가 막강한 권력을 지니고 있는만큼 위험한 길을 건너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 또한 들리나 전체적으로 반하를 믿고 따르는 이들이 많다. 대외적 가주인 한동은 누이를 따라 약관의 나이가 되자마자 입궁하여 현재 무관으로 일하고 있다.

 

진보로 머리를 돌리는 가문들이 기반을 닦을 수 있도록 아낌없이 돕는 가문이며 이따끔 평민에게 식량이나, 무기를 만들고 남은 부산물 등을 나누어주기도 한다. 이 때문에 엽을 지지하는 가문과 고까운 눈으로 보는 가문이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 전 가주인 반추와, 그의 남편 난형은 반하의 뜻을 지지하여 그가 쌓아올린 이름과 인맥을 아낌없이 사용하는 중이다.

1.돌아온 탕아, 엽 반하.

-약관이 되기 전, 온갖 망나니짓을 일삼고 다녀 엽가의 탕아라고 불렸던 엽 반하는 10년 전 납치사건을 기점으로 사람이 바뀐 듯 대신의 자리에 올라 과업에 힘쓴다. 여전히 저자와 유곽에 발걸음 하기는 하나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는 아니고, 되려 저정도 격무를 소화하면 이정도 숨통은 틔워야지, 라고 할 정도이니 알만하다. 마치 사람이 바뀐 듯 하여 납치 당했을 때 바꿔치기 당한 것은 아니냐는 우스갯소리가 들릴 뿐으로, 본인은 이러한 소문이 싫기는커녕 재미있는지 들어도 웃기만 할 뿐이다. 혹자는 놀랍다는 듯이 그를 돌아온 탕아라고 부르기도 한다.

 

264년, 납치사건으로 인해 쇠한 몸을 털고 일어나 약관의 나이가 되자마자 대신의 자리에 오른다. 그 뒤로 9년, 파죽지세로 계단을 올라 지금은 타인이 쉬이 무시할 수 없는 자리를 만들어 위치를 공고히 한다. 본디 가진 재능에 더하여 부단한 노력 끝에 나이에 맞지 않게 이례적으로 정3품 통정사(通政使) 자리에 앉았으며, 능력만 있다면 신분의 귀천을 따지지 않고 제 사람으로 들여오는 것으로 유명하다. 굳이 육부에 들지 않고 통정사(通政司)에 자리한 이유는 이 나라가 돌아가는 모양새를 가장 잘 파악할 수 있는 위치라고 생각했기 때문. 무가로 유명한 엽에서 이러한 인재가 나온 것이 참으로 모를 일이라며, 전 가주는 웃곤 하나. 냉철하나 요령좋게 상대의 체면을 깎지 않으면서 제가 바라는 안건을 이루어내는 이. 물론, 이 유능함이 해가 되어 암살위협 또한 심심치 않게 받고 있다.

 

2.좀처럼 돌아오지 않는 건강과 숱한 암살시도로 인해 쇠한 몸.

-몸을 돌보지 않은 기간이 너무 길었다. 뜻하고자 하는 바를 이루기 전까지는 죽을 수 없다는 생각에 뒤늦게나마 정신을 차렸으나 더 나빠지지 않게 유지하는 것만이 최선. 암살위협으로 인해 자잘하게 상처를 입어오긴 했어도 여태 꽤 잘 버텼으나, 약 2년 전 목덜미부터 배 언저리까지 칼이 크게 가르는 상처를 입는 바람에 건강이 약간 더 안 좋아졌다. 비가 오거나 갑자기 추워지는 날이면 꽤 몸상태가 나빠지는 모양이다.

“내 것에 손을 대고도 대가를 치르지 않으리라 생각했나, 서원.”

-본디 서먹한 사이였다. 그나마도 비교적 친근하게 대하던 반하가 소원해짐에 따라 둘은 그저 비슷한 지위의 문관과 무관, 각기 엽의 실세와 이화의 가주로서 서로를 대하였으나 처음에는 정치적 입장은 반대될 지언정 크게 나쁜 사이는 아니었다. 그랬던 이 둘의 관계가 급속도로 냉각된 계기는 서원이 제게 방해되는 세력을 대대적으로 숙청하는 과정에 있어 반하의 사람을 단 하나, 해한 것. 제게 등을 돌리지 않는 이상 제 사람을 무척 중히 여기는 반하에게 있어 이 일은 상당히 중대한 사건이었다. 이후로 서원을 바라보는 눈동자에 냉기가 감돌고, 얼마 안되어 엽과 이화의 왕래가 소리없이 끊어진다. 혹한의 계절이다. 눈이 언제 몰아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3.

-필요할 때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무력이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깨달았다. 그 뒤로 꾸준히 궁술을 수련해 대서에서 손꼽히는 명사수가 되었으며, 장검보다는 품에 넣고 사용할 수 있는 단도에 능하다.

-담배는 끊었다. 대신 사탕이나 육포 따위의 가벼운 간식거리를 종일 입에 달고 산다.

-여전히 진귀한 물건을 수집하기를 즐긴다. 지나간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듯 하다.

-10년 전의 대학살을 목격한 이후 아이와 노인에게 약해졌다. 저자에 나가면 쉽게 강매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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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엽유]

“넌 여전히 내 가장 사랑스러운 여섯번째 동생이란다, 엽유야.”

-264년 초, 오래 앓던 엽유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으나 처음에는 믿지 못한다. 성치 않은 몸으로 가 가문으로 뛰쳐들어가 엽유가 죽었다는 증거를 내놓으라며 한바탕 소란을 떨었으나 이렇다할 대답을 얻지 못한 채 그대로 쓰러져 한동안 앓았다. 엽유에게 끝내 주지 못했던 선물을 바라보며 술잔을 기울이기를 한참, 평소처럼 유곽을 드나들던 중 엽유와 아주 닮은 이를 만나게 된다. 어린 동생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제 눈을 믿지 못하나 결국 그가 죽었다 알려진 엽유라는 것을 깨닫고 오래 울었다. 이후로 자주 유곽에 들러 엽유를 찾으며, 야속하게 흐른 시간을 증명하듯 한동안 어색한 사이를 유지했으나 271년, 반하가 암살사건을 겪고 사경을 헤매다 다시 정신을 차린 것을 계기로 관계는 급하게 호전된다. 지금은 무척 양호한 관계를 유지중. 엽유 또한 약관의 나이를 지난지 한참이 되었으나 여전히 열네 살 어린 아이인 것처럼 아끼고 귀여워한다.  

 

[진 매양]

“이렇게라도 얼굴을 보니 좋군, 매양.”

-바람결에 진 가의 가주가 매양으로 바뀌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나, 지난 시간을 함께 한 소꿉친구라는 이름이 무색하게도 얼굴을 보는 일이 줄어들었다. 겪은 일이 일이다보니 여러가지로 생각이 많겠지 싶어 채근하지 않고 기다리기를 얼마나 했을까, 5년 전 어느 날 갑작스레 매양이 찾아왔다. 손에는 설산에서 잃어버렸던 담뱃대 하나를 쥐고서. 반하가 담배를 끊은 일을 몰랐다는 듯 공연히 찾아왔다며 금세 자리를 뜨려는 매양을 붙들고 밥 한끼 하고가라, 차 한잔 하고 가라며 굳이 붙잡아 앉혔다. 그리고 마치 어제 만난 사람처럼 이리 얼굴을 보니 좋다는 말만 건넸을 뿐. 시대는 변했고 사람 또한 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 공백을 깨고 만난 옛 친구의 얼굴은 그저 반갑기만 할 뿐이다. 그가 이런저런 잔꾀를 꾀할 인물이 아니라고 생각한 것도 한 몫했을 것이다. 어색한 얼굴로 머리가 아픈 일이 생기면 활이라도 당기러 오라는 매양의 말에 두말않고 걸음한다. 이를 계기로 정기적으로 얼굴을 마주하는 사이가 되었으며, 어른의 사정으로 성질이 뻗치지만 참아야하는 일이 생기면 활터로 나와 매양을 붙든 채 묵묵히 몇 대고 활을 쏘곤 한다.

 

[주 예련]

“이리 불가에 함께 앉아있으니 옛 생각이 나. 안그런가, 예련?”

-설산에서의 그 밤 이후로 얼마나 지났을까. 두 사람 사이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끈끈한 유대가 피어오른다. 사적으로도, 공적으로도 믿을 수 있는 이라고 여기고 있으며 이러한 신뢰를 겉으로 내보여주기라도 하는 듯 자신의 두 동생인 마랑과 편갑을 예련의 제자로 들였다. 그에서 그치지 않고 주 가에게 혼담을 보내 예련의 제자로 둘인 엽 가의 넷째 마랑과 예련의 막내동생을 약혼관계에 두기에 이른다. 종종 나란히 앉아 정사에 대해 토론하는 모습을 볼 수 있으며, 가문단위로 긴밀하게 교류하는 사이. 특히 반하를 잘 따르는 예련의 막내동생을 안아올리곤, 네가 내 동생과 혼인할 때 즈음이면 새로운 계절이 올 것이다, 라고 웃는 모습을 이따금 볼 수 있다.

 

[백 리강]

“자네 곁에는 내가 있다는 걸 잊지 말게, 리강.”

-뜻을 함께하는 오랜 지기. 책임질 것이 생기고, 이루어야할 뜻이 생기면서 한층 무겁고 단단해지는 서로를 곁에서 지켜봐온 친우다. 같은 진보파 대신으로서 빈 자리는 메워주고 부족한 것은 더해가면서 함께 진보세력을 규합해가는 마음 든든한 우방이기도 하다. 둘이 만나면 대개 나라의 앞날이나 다 마치지 못한 업무 등 공적인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 잦으나, 가끔은 술을 즐기지 않는 리강을 붙들어 앉혀두고 찻물을 데우기도 한다. 이러한 길을 선택한 데는 후회가 없으나 가끔은 마음을 쉬고 싶은 것도 사실이므로. 그럴 때면 뜻을 함께하는 동료이기 이전에 오래 보아온 친우인 리강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낸다.

 

덧. 가끔 마시는 차가 술이 되고, 나누는 이야기가 묘한 숨을 섞을 때가 있다. 취기에 하룻밤 실수로 몸을 섞은 일이 있는데, 잠에서 깬 리강의 얼굴이 창백해져 우왕좌왕하며 책임지겠다는 말을 툭 뱉으니 어찌 웃음이 터져나오지 않을 수 있으랴. 수줍게 얼굴을 붉히는 대신 그 입을 입술로 막고 서로 책임지고 있는 가문이 있는데 어찌 그런 말을 하나. 하지만 내 자네가 원하면 책임져줄 수는 있지. 하고 농섞인 말을 뱉은 뒤 내킬 때 다시 함께 하자는 말만 덧붙이고 엽 가로 돌아왔을 뿐이다. 이후로도 이따금 침상을 함께 하곤 한다.

 

[흑수각라 기린]

“발에 깃들었던 화마가 더욱 거세지셨습니다, 기린.”

-조심스럽게 제 세력을 불리는 반하로서는 대놓고 대립하고 싶지는 않은 상대였으나, 주창하는 바가 다르니 어쩔 수 없는 일. 사사건건 의견이 반대하는 탓에 요령좋게 그들의 뜻을 물리고, 세번에 두번 정도는 제가 원하는 바를 이루어내고는 한다. 이로 인해 흑수각라의 독자와 썩 좋은 관계에 있지는 않은 듯 하나, 만날 때마다 그들 사이로 새파랗게 불이 이는 것을 보면 비단 그 사이에 있는 일이 그뿐만은 아닌 듯 했다.

 

[서문 령]

“그렇기에 정이라고 부르는 것 아니겠느냐.”

-제 눈과 꼭 닮았으나, 그를 들여다볼 때마다 무거운 회빛으로 침잠하는 반하의 눈동자와는 달리 단 한 번도 가진 빛을 바꾸지 않는 령의 의안을 볼 때마다 두 사람 사이로 묘한 기류가 흐른다. 겉으로는, 그저 오래 보아온 동생을 대하듯 친근하게 대하나 확연하게 거리가 벌어졌다. 그 틈으로 혹한의 바람이 분다. 10년이라는 세월이 앗아간 것이 무엇인지 타인은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다.

 

[류 연]

“이런, 이런. 네 활솜씨는 해가 가도 영 늘지를 않는구나.”

-납치사건 이후, 정신이 들자마자 곧장 연의 손에 맞는 활을 한 대 보냈다. 그 뒤로 너스레가 는 연이 다른 활도 부탁드린다 하여 때가 될 때마다 새 활을 만들어 보내고 있다. 엽 가의 궁시장(弓矢匠)은 이제 엽의 활과 화살을 만들면서 연의 것도 함께 만들 정도. 활을 받은 연은 ‘보답은 나중에 넉넉하게 해드리겠다’라고 말했지만 아직 보답이랄만한 것을 제대로 받은 적은 없다. 반하 또한 특별히 채근하는 기색없이 이따금 연을 불러 활을 쏘러 나가고는 한다. 함께 나가면 연의 활솜씨가 영 발전이 없다며 농조로 웃곤 하지만 정작 붙잡고 가르칠 생각은 없는 듯. 활은 바람을 쐬러 나갈 구실정도나 되는 듯 하다.

 

[벽려 위]

“본디 새가 노래하듯 아름다운 목소리였으나 침상 위에서 지저귈 때가 가장 사랑스럽구나, 위야. 아니, 이제 귀비마마라 불러야할까.”

-소꿉친구였던 위와 반하의 관계도는 그야말로 파란만장하다. 본디 소꿉친구로 시작하여 오손도손 즐거운 유년시절을 보냈으나 각 가문이 걷는 길이 달라지며 소원해졌더랬다. 그리고 설산에서의 그 며칠 이후로 한동안 각자 바쁜 시간을 보내느라 또 한참을 보지 못하였는데, 평소처럼 유곽으로 걸음한 반하의 얼굴에 익숙한 얼굴이 비쳤으니. 유곽에서 벌어지는 일은 대외적으로나마 입을 다무는 것이 손님 간의 불문율. 별다른 일이 없었다면 반하는 위가 벌이는 일탈을 눈감아 주었을 것이다. 그가 다소 거친 방법으로 제 입을 막지만 않았더라면. 위는 그 날 타인의 온기가 필요했고 반하는 오는 이를 막지 않았으니, 둘이 수월하게 관계를 맺은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수순이라 볼 수 있으리라. 이후로도 유곽 안과 밖이 다른 관계를 길게 지속한다. 그리고 위가 귀비의 이름을 받은 지금은, 글쎄. 함께 하는 모습 조차 쉬이 보이지 않으니 이 관계가 다시 어떻게 달라졌는지 타인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이화 서원]

“내 것의 손을 대고도 대가를 치르지 않으리라 생각했나, 서원.”

-본디 서먹한 사이였다. 그나마도 비교적 친근하게 대하던 반하가 소원해짐에 따라 둘은 그저 비슷한 지위의 문관과 무관, 각기 엽의 실세와 이화의 가주로서 서로를 대하였으나 처음에는 정치적 입장은 반대될 지언정 크게 나쁜 사이는 아니었다. 그랬던 이 둘의 관계가 급속도로 냉각된 계기는 서원이 제게 방해되는 세력을 대대적으로 숙청하는 과정에 있어 반하의 사람을 단 하나, 해한 것. 제게 등을 돌리지 않는 이상 제 사람을 무척 중히 여기는 반하에게 있어 이 일은 상당히 중대한 사건이었다. 이후로 서원을 바라보는 눈동자에 냉기가 감돌고, 얼마 안되어 엽과 이화의 왕래가 소리없이 끊어진다. 혹한의 계절이다. 눈이 언제 몰아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허 주영랑]

“아직 바람이 따를 때 걸어야하지 않겠나, 주영랑.”

-주영랑이 아무리 잔소리를 해도 그저 다 죽어가는 몸, 한순간의 즐거움이나마 구가해야 살 맛이 나지 않겠냐고 말하던 반하다. 그런 이가 대체 무슨 심경의 변화였는지 납치 사건 이후 한참을 앓더니 일어나 주영랑에게 서신을 보낸다. 살고자 하는 이유가 생겼으니 지식을 나누어 주었으면 한다는 내용의 서신이었다. 이후로 주영랑의 꾸준한 노력으로 더 나아지지는 않을 지언정 더 나빠지지도 않는 상태의 몸을 간신히 유지하고 있는 듯. 위험한 위치에 있는 만큼 시시때때로 목숨의 위협을 받기도 하는데, 이럴 때면 급하게 허가로 사람을 보내 주영랑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보수, 진보, 그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고 그저 환자로서 자신을 대하는 주영랑의 태도에도 꽤 신뢰를 느끼는 모양이다.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반하의 상태를 보며 아가씨보다 제가 먼저 졸도해 황천길 돌멩이 수를 셀 것이라 주영랑을 붙잡고 투덜거리는 엽가의 전속의원 국료菊瞭의 이야기가 귀에 들려올 때마다 난 모른다는 듯이 귀를 후비는 모습도 이따금 보인다.

 

[소라 (엽 희라)]

“둘만 있을 때는 소라라고 부르마.”

-10년이란 사람을 어떤 방향으로도 바꿀 수 있는 세월. 그 좁은 곳간에서의 함께 보낸 며칠 이후, 이화 가의 지원을 받고 다시 모습을 드러낸 소라와 재회한다. 그와 연이 있는 무가라는 것도 있어, 여러 가문에서 오는 혼담 중 엽이 보낸 것이 받아들여져 이후 그를 데릴사위로 들인다. 반하의 둘째 동생 엽 서형이 그와 혼인하였으며, 데릴사위로 들어온 소라는 희라로 이름을 바꾸고 엽의 성씨를 받는다. 단 둘이 있을 때는 희라라는 이름대신 소라라고 부르곤 하며, 그가 안정과 힘을 원한다는 것을 알고 그에 가능한 힘을 실어주려고 하는 편이다. 세력과 덩치가 불어난만큼 혼자 쉬이 움직이기 어려워 이따금 제가 할 수 없는 일을 소라에게 부탁하곤 하나, 가족으로 들인 상대이기 때문에 제 수족으로 부리는 이들에게 명하는 것들처럼 과한 부탁은 자중하는 듯 보인다.

 

[현]

“이런, 네가 벌써 이리 술잔을 기울일 나이가 되었다니.”

-제가 담근 연엽주가 그리 맛이 좋답니다, 누님. 너스레를 떠는 소년의 말에 함께 설산으로 밤마실을 나갔던 것이 마치 아득한 옛일처럼 느껴진다. 납치사건 이후 앓느라 잠시간 만나지 못했으나, 다시 재회한 이래로 현에게 이런저런 일을 부탁하고 있다. 이전처럼 제 한 몸 훌쩍 움직여 여기저기 쏘다니기에는 따라붙는 시선이 너무 많아졌고, 거듭되는 암살시도로 인해 본래도 좋지 않았던 몸이 한층 쇠한 탓이다. 오랫동안 알고 지냈던 현을 신뢰하는 이유또한 있으리라. 둘이 만날 때는 대체로 공적인 이야기를 나누지만, 그가 끝나면 기다렸다는 듯이 준비해두었던 술상을 내오곤 한다. 술잔을 기울이면서 만족스레 두런두런 이야기를 꺼내는 현을 보는 반하의 시선이 흡족스럽고, 어딘가 부드러워보이는 것은 아마 기분탓만은 아니겠지.

 

[은]

“따른다면 바라는 것을 얻게 될 것이다, 은.”

-이제 밧줄은 필요 없나. 궁에서 재회한 은에게 처음 건넨 말이다. 능력만 있다면 귀천을 크게 가리지 않는다는 소문답게, 궁에 들어온지 얼마 되지 않아 이렇다할 기반이 없었던 은의 뒷배를 봐주고 물심양면으로 지지해준 뒤 제 사람으로 들인다. 비록 충의로 맺어져있다고 할 정도로 끈끈한 관계라고까지는 볼 수 없으나, 맺는 것이 깔끔하고 다른 생각을 하지 않는 은을 꽤 신뢰하고 있는 듯 하다. 은이 자신에게 최선을 다하는 이상 자신도 그에 걸맞는 대가를 내줄 생각을 하고 있으며, 이것은 생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태도로도 드러난다.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제게 토를 달지 않고, 사적으로 대화를 나눌 때는 곧잘 제게 말려들고 아차하는 표정을 짓는 은이 제법 귀엽다고 생각하는 듯 하다. 이따금 따로 불러 포상을 내리기도 하나, 금전이 아니라 현물, 그것도 은이 받고 싶어하는 선물이 아니라 제가 주고 싶어하는 선물을 내주는 일이 잦다. 은의 반응을 재미있어 하는 듯.

 

[부유 (소섭 위비)]

“하하하. 생각보다 키가 많이 자라지 않았는데. 하지만 아름다워졌구나, 위비.”

-설산에 귀걸이를 남기고 온지 몇 년이 지났는가. 초대장을 받고 찾아간 연회에서 제가 건넨 귀걸이를 하고 재회한 위비는 이전과는 모든 것이 달라져 있었다. 다시 만난 인연을 기꺼워한 반하는 스스럼없이 그와의 관계를 이어갔고, 진보파로 돌아선지 얼마 되지 않은 소섭 가를 위해 많은 힘을 실어주었다. 위비와는 속을 터놓고 여러가지를 이야기하는 사이로, 유명한 무희이자 가희인 그에게 개인적인 부탁을 하는 경우도 왕왕 있는 모양이다. 물론, 맨입으로 부탁을 할 수는 없는 법. 진보파 대신으로서 위치를 공고히 하고 있는 반하 또한 위비의 청은 비교적 수월하게 들어주곤 한다.

 

 

[주 창]

“건강해보이십니다, 주 공.”

-갑자기 정계에 나타나 날로 기세를 더해가는 남자. 후환이 두려워 치기는 지나치게 성급하다 여겨지나, 결코 방심할 수는 없는 상대. 그것이 엽 반하가 생각하는 주 창이었다. 대외적으로는 상당히 온후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나 뒤로 쉴새없이 암투가 오가는 상황. 대놓고 적대하기에도, 그렇다고 마음을 놓기에도 여의치 않은 것은 이 남자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것이 퍽 적기 때문이리라. 그러니 경계할 수밖에.  

 

[사마 후]

“끝나지 않았다. 다만 판이 바뀌었을 뿐이지, 후.”

-세월이란 얼마나 야속한 것인가. 이제 지나간 어린 날, 설산의 한 작은 곳간에서 후와 청운의 꿈을 걸고 약조를 하였으나 내기를 위해 한 자리에 앉기에 둘은 너무 먼 길을 오고 말았다. 입궁한 뒤로 좋지 못한 소문을 꾸준히 들어와 불편한 마음이 들긴 하였으나 제가 아는 사마 후라는 남자는 그럴만한 위인이 아니라고 여기던 와중, 지방에 시찰을 나갔다 때마침 도적소탕에 나선 후와 마주친다. 명받은 바에 비해 지나치게 과하고 잔혹한 후의 처사에 정색을 하고 “그쯤 해두게, 이는 도살이나 다름없지 않나.” 라며 가로막고 나섰으나, 후는 그리하겠다 답한 뒤 반하가 물러서자마자 남은 이 모두를 베어넘겼다. 이를 계기로 반하는 제가 사람을 잘못 보았다며 후를 향한 극명한 거부감과 경멸을 드러내었으며, 두 사람의 관계는 지난 날 약조했던 바와는 정반대의 국면을 맞고 있다.

 

[안화 (천유)]

“자네 팔이 딱 걸치기 좋은 곳에 있는 것이 내 탓은 아니지 않나, 천유.”

-안화, 아니. 바뀐 이름은 천유라고 했던가. 그와 마주한 것은 반하가 스물 다섯 되던 해의 일로, 과거의 모습을 짚어낼 수 없을 정도로 바뀐 모습에 처음에는 알아보지 못했다. 우연찮은 기회에 가려진 얼굴을 본 것을 계기로 과거의 안화를 기억해냈으나, 그것이 반하와 천유의 관계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 듯 하다. 진보파 문관인 천유가 기반을 닦을 수 있도록 내외로 크게 후원해준 인물로 사적인 관계도 꽤 양호하다. 천유가 살갑게 안겨들거나, 반하가 천유의 어깨에 팔을 걸치는 등 친근한 모습을 왕왕 볼 수 있는 듯.

 

[자명 (청오)]

“가서 물어뜯거라, 청오.”

-언제쯤이었던가. 평소같으면 아랫사람을 보냈을 것인데, 뜻밖에 마음이 내켜 변방으로 시찰을 나갔던 때. 허연 눈과 흙먼지를 뒤집어 쓴 자명을 만난다. 세월이 이정도로 흘렀던가, 많이 달라진 모습에 처음에는 알아보지 못했으나 문득 스치는 기시감에 곰곰히 그를 뜯어보다 누군지 알아차린다. 반하는 과거를 재차 묻는 대신 자명, 이제는 청오로 이름을 바꾼 그를 제 사람으로 들였으며, 변방을 떠돌던 들개를 제 사냥개로 길들인다. 그렇다 하여 둘 사이에 어떤 끈끈한 충성심이 따라붙는 것은 아니다. 다만 반하는 저를 따르는 개를 홀대하며 쉬이 내치는 이가 아니었으며, 청오 또한 아무것도 묻지 않고 자신을 밑으로 들여 궁으로 들어갈 수 있게 해준 주군을 물어뜯을 이유가 없었으므로. 그런 알 수 없는 미지근한 신뢰를 매개로 한 상하관계를 지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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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ver Of No Return - (End Roll Version) - Red Cliff Soundtr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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