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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께를 훌쩍 넘는 백색 머리칼이 달빛을 담은 듯 첨예하게 부숴지는 빛을 낸다. 그에 걸맞게 창백한 피부, 느긋한 미소, 시원하게 뻗은 팔다리와 커다란 키, 나비가면. 하지만 별로, 신비로워 보이진 않는다. 그는 속세에 녹아들 수 있도록 잘 훈련받은 상등품의 광대다.

나비

拏緋

29|남성|190cm / 마른 근육 | 궁인

가면을 쓴 광대 | 주색을 일삼는 풍류객 | 예측가능한 상식인 

새장에 갇힌 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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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글맞은 / 장난기 넘치는 / 예인藝人

사근사근한 목소리가 퍽 능청맞게 말을 걸어온다. 나비는 당신을 즐겁게하기 위해 존재하는 몸. 가면 아래 미소가 거둬지는 날은 없으며 짖굿은 장난은 멈추지 않는다. 고의적으로 허술한 모습을 보이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유들유들한 성격에 처세술이 좋아 능구렁이같다는 평이 흔하다. 대서에서 가장 유명한 광대. 예인. 궁궐 최고의 악사. 나비.

 

방탕한 / 거리낌없는 / 난봉꾼

기방을 제 집처럼 넘나들며 유흥을 즐긴다. 그곳은 나비의 또 다른 일터. 타인의 유혹을 마다하지 않으며, 아니. 오히려 그 방법을 이용해 성공한 가장 이상적인 사례. 누군가 원한다면, 본인의 몸을 다루는 방식에 가리는 것은 없다. 그에 따라 경멸어린 시선을 받는다 한들 사람좋게 웃어보일 뿐이다.

 

절제하는 / 차분한 / 교양인

그렇다고 나비가 생각없이 사람을 대하는 무뢰한이라는 건 아니다. 타인이 정해놓은 선을 넘는 일은 없으며, 허랑방탕한 동시에 자제력이 높다. 그렇게 보이진 않지만, 언제나 제 언행이 어떤 결과를 불러일으킬지 신중히 재고 움직이며, 상식 외의 행동은 범하지 않는다.

 

예민한 / 까탈스러운 / 광증?

"몇몇 사람들은, 알음알음 알고있지. 그러니까 같이 공연하는 장악원 인간들 중에, 얼굴 부대낄 일이 많은 사람들 말이야. 갑자기 저 혼자 우투거니 서 있다 말고 들고있던 악기를 때려 부수더라니까. 아, 사실 나도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뭐어..."

[ 가희 歌戲 ]

유별나게 유흥과 예술을 즐기기로 유명한 대서의 귀족가문. 대부호인데다가 가문 성격 상 타 귀족과의 친목과 교류가 잦지만 정치적 중립을 고수하고 벼슬에서 물러났기 때문에 황실에서는 크게 언급되지 않는다.

현 가주는 가희 진 歌戲 珍. 밤마다 주색잡기를 즐긴다거나, 아름답기만 하다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거둔다는 음험한 소문의 주인공이며, 대부분 사실이다. 그렇다고 가문을 운용하는 능력은 형편없다고 보긴 힘든지라 가희 가는 문제없이 도성에 자리를 지키고 있다. 남편이 죽고 나이가 쉰을 넘어가도록 자식이 없어 입양을 고려 중이라는 얘기가 있다.

 

265년, 가희 진은 한의 국경에서 출신 모를 남자를 하나 데려온다. 이름은 나비. 그는 약 3년만에 대서에서 가장 유명한 광대가 된다.

 

 

[ 나비 拏緋 ]

현재, 한의 후궁 벽려 위, 그리고 파한 백서와 높은 친분을 보이고, 대부호 가희 가문을 발판 삼으며, 궁궐의 연회란 연회에는 빠지지 않는, 황실 최고의 악사.

 

지금으로부터 약 8년 전, 나비는 가희 진에게 거둬져 그녀를 위해서 연주하는 광대가 된다. 가희 진이 일상처럼 연회를 열 때마다 나비는 수많은 귀족들 앞에서 악기를 연주하였고, 이는 오래 지나지 않아 유흥을 즐기는 귀족가문들 사이에서 "가희 가문에 아주 뛰어난 재주를 가진 광대가 있다더라"는 소문으로 퍼져나간다.

 

가희 가문에서 여는 연회 뿐만 아니라 다른 귀족가문 끼리의 혼인이나 도성 어딘가에서 열리는 공연에도 종종 불려가 연주를 선보이던 나비는, 유명세가 정점을 찌를 무렵인 269년, 25세 때 벽려 가문의 추천을 받아 궁에서 초청공연을 하게 된다. 공연은 성공적이었고, 총사와 황후는 호평을 내렸다. 나비는 바로 그 해에 황실의 악사로써 입궁한다.

 

본래 가희 가문 소속의 광대였으나, 입궁한 후로부터는 다소 독립적인 행보를 보였다. 교류가 아예 끊긴 것은 아니지만 더이상 가희 진에게 과하게 의존하지 않는다.

 

 

[ 광대 廣大 ]

대서에서 가장 유명한 광대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가무와 연주, 연극 등에 출중한 실력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대외적인 인상이 '광대'라는 표현으로 굳혀졌을 뿐, 실제로 나비가 가장 유명해질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연주실력이다. 궁에서도 춤과 연극을 종종 선보이긴 하지만 보통은 금, 피리, 비파, 퉁소, 대금 등 다양한 악기를 연주한다.

 

언제나 가면을 쓰고 다닌다. 10년 전부터 쓰고 다니던 바로 그 나비가면. 물론 가끔가다 다른 가면을 쓰기도 한다. 답답하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광대로써의 본분을 다하고 있는 중입니다." 하고 태연하게 웃어보인다. 그런 것 치곤 하루 종일 쓰고 있는 것을 보아... ...일 중독인가?

 

살갑고 사회적인 성격이지만 예인으로써의 나비는 제법 가차없다. 나비는 궁중음악을 담당하는 장악원의 대신들과 함께 궁궐에서 열리는 공연의 기획을 총괄하거나 연출을 담당하기도 하는데, 그럴 때마다 극도로 완벽주의적이고 철저한 면모를 보이며 주변을 괴롭게한다는 것은 같은 장악원의 사람들 사이에서 이미 널리 퍼진 사실이다. 하지만 그만큼 나비가 기획한 공연은 실수 하나 없이 완벽하게 끝나는 일이 대부분이었고, 넉살 좋은 성격으로 단원 한 명 한 명에게 격려를 보내고 뒷처리 또한 깔끔하게 하니 사람들 사이에 큰 불만은 없는 편이다.

 

정치적 성향은 딱히 드러내지 않는다. 애초에 진보파 보수파 따위하고는 상관없는 광대의 신분. 나비는 그저 오늘도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연주를 시작한다.

 

 

[ 그 외 外 ]

여전히 건강이 좋지 않아 나름대로 자기관리를 하고 있다. 과거에 비해 증세가 크게 호전된 편은 아니지만 악화된 것도 아니다. 며칠 밤을 새고도 멀쩡한 낯으로 공연을 끝마치자마자 무대 뒤에서 푹 쓰러져버리거나, 기침이 잦아 공연에 오르기 전에는 꼭 그에 좋은 탕약을 마시곤 한다.

 

모두에게 존댓말을 쓴다. 이따금 반말이 툭툭 튀어나올 때도 있지만 대부분 친근감을 위한 예의섞인 고의이다. 궁인보다 높은 신분에게는 '님' 자를 붙여 호칭한다.

 

원체 살이 쉽게 붙는 체질이 아니었고 키가 굉장히 크기 때문에 헐렁한 옷을 갖춰입으면 다소 호리호리한 체격으로 보인다. 건장하다고 보긴 힘들지만 심하지 않은 수준의 마른 근육을 갖추고 있어 의외로 병약하다는 느낌은 나지 않는다. ...라고 나비의 몸을 본 사람들은 말한다.

 

또한 몸 곳곳에 크고 작은 흉터가 있다. 왼쪽 옆구리에 제법 큰 자상의 흔적, 곳곳에 불로 지져진 듯한 화상, 자잘히 베이고 굳어진 흉들.

 

여러 방면으로 인맥이 넓다. 특히 유흥가. 대서의 기방이며 술집에서 나비의 이름을 모르면 첩자라는 말도 있다. 거기서도 가면은 벗지 않는 것을 보아 일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미친사람이라는 소문이 있다. 갑자기 방에 틀어박혀 온갖 살림살이를 다 때려부수거나, 잔뜩 날이 선 눈을 하고서는 밖으로 뛰쳐나가 버린다거나. 그런 모습을 간헐적으로 보인다는, 그런 소문. 물론 소문일 뿐이라 나비의 평판에는 큰 타격을 주지 못한다.

 

칼춤을 배웠다. 예련에게 나름의 무예도 전수받아 그럴듯하게 검을 다룰 줄 안다. 꽤 실력이 좋아 요즈음 공연에서 종종 칼춤을 선보이기도 한다.

묶이는 걸 싫어한다. 손목이나 발목이 잡히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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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명 ] "아픈 김에 얼굴도 보면 좋지 않습니까. 그렇지?"

평소처럼 궁에서 열린 공연을 무사히 끝마쳤다. 지친 몸을 끌고 돌아가려던 찰나, 나비의 팔을 다급하게 잡아 돌리는 손길이 있었다. 그에 마주한 낯설고도 익숙한 얼굴이 무명이라는 것은, 제법 놀랄만한 일이었다. 그런 만남이 있고부터 나비가 내의원에 가장 자주 찾아오는 사람 중 하나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원래도 방문이 잦은 환자였지만. 약을 받으러 온 주제에 시답잖은 이야기는 뭘 그리 많이 하는지. 쓴 약을 들이키는 것은 반가울 수 없었으나 무명과 대화를 나누는 것은 즐거웠다. 가끔 잔소리를 듣긴 해도 말이다.

 

 

[ 고도(휘호 탄) ] "고도는 여전하네요. 그래서 좋습니다."

 자신의 공연을 보는 수많은 관객. 그 중에 하나. 우연히 마주쳤고, 고의로 다가갔다. 어쩌다 궁에 왔는지, 언제부터 보고 있었는지, 그동안 어디서 뭘 하고 있었는지 궁금한 것은 많았지만. 알려주지 않아도 괜찮았다. 고도는 여전히 나비의 가장 오래된 관객이었고, 나비는 고도가 가장 좋아하는 광대였으니. 이따금 화려한 무대가 아닌 구름 낀 달빛을 조명 삼아 고도와 자신만을 위한 연주를 들려주기도 했다. 여러모로 향수를 일으키게 하는 존재.

 

 

[ 엽유 ] "이따가 술이나 마시러 갈게. 기다리고 있으세요."

굉장히 사적인 사이. 입궁 후에도 유곽을 제 집처럼 드나드는 게 일상이던 나비는 그곳에서 한 탕아와 마주쳤다. 그 남자에게서는 기억 속에 남아있던 자유롭고 순수한 아이의 그 무엇도 찾아볼 수 없었지만, 가 가문의 소문과 엽유라는 이름으로 어렵지않게 정체를 눈치챌 수 있었다. 퍽 마음에 들었던 아이인지라 답지않게 안타까운 마음이 든 것인지. 그 후로도 시시콜콜한 이유를 대며 엽유에게 찾아와 만남을 즐겼고, 서로의 과거를 굳이 수면 위로 언급하지 않으며 지금의 관계에 애착을 두고있다.

 

 

[ 진 매양 ] "솔직히 여기에 매양님 편지도 껴 있는 거 아닙니까? 농담입니다."

궁궐에서 가장 바쁘게 움직이는 악사답게 나비는 군을 위한 위문공연에서도 빠지지 않는 존재였다. 공연이 끝나고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나비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왈패단' 시절의 나비를. 이렇게 재회하게 된 것은 꽤 놀랍고도 신선한 일이었지만, 이 일을 계기로 매양은 부하들의 심부름을 떠안게 되었다. 나비의 공연을 좋아하는 병사들이 준비한 편지며 선물 따위를 매양에게 전해달라고 부탁한 것. 한껏 귀찮아하면서도 꼬박꼬박 편지를 전해주는 매양을 재미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유쾌한 인연.

 

 

[ 백 리강 ] "나는 끝까지 너와 함께."

나비가 황실군에게 끌려가 행방이 묘연해진 이후, 리강이 그 흔적을 수소문 했다지만 결국 나비를 찾을 수 없었다. 그로부터 몇년 후. 나비는 유흥을 즐기는 귀족들 사이에서 유명한 광대가 되어 있었고, 그 날도 연회를 즐기러 온 수많은 귀족들 사이에서 연주를 하던 참이었다. 그 사이에서 소문을 듣고 혹시나 하여 찾아온 리강을 보았다. 처음엔 내가 드디어 헛것을 보는구나 싶었건만, 눈 앞의 환상은 너무나 또렷했고, 잡은 손이 온기가 실감나게 따스했다. 다신 헤어지지 않을 인연. 나비는 입궁한 후에도 사적으로나 공적으로나 리강과 만나는 일이 잦았다. 유일하게 감정을 숨기지 않고 모든 걸 털어놓는 관계. 사람들은 그것을, 친우라고 부른다.

 

 

[ 허 주영랑 ] "오늘 몸 상태는 어때요? 물론 주영랑님 말고, 저요."

나비는 확실히 사랑받는 광대였다. 그렇기에 나비를 거둔 가희 진은 손수 주영랑이라는 귀한 몸의 의원을 불러 나비의 진찰을 맡기곤 했다. 아플 일이 많다보니 만날 일이 많은 건 당연지사. 서로를 뚜렷하게 알아보지는 못하는 모양이었지만... 상관없었다. 의원과 환자. 그 간단명료한 사이에 특별한 과거는 필요하지 않으니까. 나비가 궁에 입궐하고 나서도 내의원을 들르는 일은 잦았다. 그곳에서도 주영랑을 만나게 됐고, 새삼 주영랑님의 단골 아니냐며 웃지 못할 농담을 건내기도 한다. 현재에도 내의원에서가 아닌 개인적인 요청으로 약을 받는 일이 흔하다.

 

 

[ 파한 백서 ] "저희는 그저 즐기는 겁니다. 귀찮게 뭘 다른 생각을."

파한 백서 17세. 파한 가문의 세력을 넓히는 움직임에는 가희 가문도 포함되어 있었다. 두 가문의 친목을 위한 연회가 벌어졌고, 그곳에서 백서와 나비는 마주한다. 둘은 서로에게 흥미를 가졌지만 그것이 과거의 인연을 뜻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백서는 나비의 공연이 마음에 들었고, 나비는 백서의 안목이 흥미로웠다. 시작은 정치적 만남이었건만, 둘은 자연스럽게 예술가무를 즐기며 급속도로 친분을 쌓게 된다. 가문끼리의 화목을 보여주기 위해서라기보단... 정말, 말 그대로 잘 논다. 후궁과 노니는 광대라는 대범한 소문이 날 정도이지만 딱히 신의가 두터운 사이는 아니다. 즐기는 것과 믿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 소라(희라) ] "소라, 다과 먹을래요? 맛있는데."

서로 입궁한지 얼마되지 않아 궁에서 마주쳤다. 소라는 어쩐 이유인지 처음엔 나비를 모른다는 듯이 굴었었지만, 나비 쪽은 그럴 이유가 없기에 (오히려 반가운 쪽이고) 소라에게 먼저 다가가 말을 걸었다. 그 능청맞은 성격으로 한참을 귀찮게 구니, 소라도 적당히 받아주며 말을 틀 수 있게 되었다. 왈패단 시절 한참 어리고 작았던 소라가 생각나 이것저것 챙겨주며 어린애 취급을 했다만, 시간이 갈수록 꾸준히 사회적으로 성장하는 모습에 기특하면서도 내심 아쉽다며 너스레를 떨고있다. 이 따금 그 쪽으론 아예 문외한인 소라를 데리고 술을 마시러 가기도 한다.

 

 

[ 벽려 위 ] "당신의 부탁이라면 무얼 연주 못하겠습니까."

나비가 입궁하기 전, 그는 평소와 다를 것 없이 방문한 기방에서 묘한 분위기의 여인과 대화를 나누게 된다. 그리 독특한 행색도 아니었건만 자꾸 알 수 없는 익숙한 기분이 들었다. 그 익숙함의 원인은 새벽 어스름이 내려오는 베개맡 위에서 알게 될 수 있었다. 자고 일어나서야 과거의 연을 눈치챈 것은 꽤 우스운 경험이었지만, 불쾌하진 않았다. 오히려 이 일을 계기로 나비와 위는 기방에서 유흥을 보내는 것을 즐겼다. 다음 해, 나비는 벽려 가의 입김을 받아 궁으로부터 초청을 받고, 그 위세를 타 황궁의 악사로써 입궐한다. 현재에도 나비는 벽려 가에서 여는 연회에는 꼬박꼬박 참여하는 등의 친분을 보이고 있다.

 

 

[ 주 예련 ] "전 괜찮습니다. 하지만... 고마워요."

예련이 공적인 이유로 나비와 마주치게 될 일은 드물었다. 그렇기에 둘의 재회는 지극히 사적이었다. 익숙하게 궁에서의 연극을 마친 그 날. 그 날따라 왜 그렇게 답답한 기분이 들었는지. 이유는 없다. 그저 나비의 변덕적인 우울이었으니까. 정리는 뒷전으로 맡기고 궐 외곽 인적 드문 곳으로 뛰쳐나가 가면을 벗어던지고 피리를 부숴트렸다. 그제서야 뭐가 풀리는 기분이 들어 숨을 고르고 있는데, 난데없이 서늘한 공기가 통하던 어깨에 툭하고 망토가 덮였다. 친절을 베푼 낯선 무관에게 든 생각은 고마움이 아닌 속을 들켰다는 당혹감이었지만, 그보다 더 놀라웠던 것은 그가 예련이라는 사실이었다. 예련은 나비의 비밀을 딱히 문제시 삼지도, 크게 동정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담담한 연이 시작되고, 나비는 칼춤을 연습해야 한다는 목적으로 예련에게 간단한 무예를 가르침 받는다. 처음은 반쯤 장난으로 요청한 것이었지만, 제 동생이 나비의 연주를 좋아한다며, 동생을 위해 특별공연을 해 준다면 이 쪽도 특별히 칼 쓰는 법을 가르쳐주겠다고 제안하길래 유쾌하게 웃으며 승낙했다. 예련은 담담하고, 조용하고, 다정했다. 그것이 오히려 편하고 고마웠다. 예련에게 다른 의도없이 순수한 호의로 달 모양의 장신구를 선물해줬다.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 현 - 부유(소섭 위비) ] "오늘 공연도 신나게 즐기고 옵시다. 물론 실수는 금물이고."

옛날이나 지금이나, 현과는 큰 생각의 거침없이 시원시원하게 대할 수 있는 것이 편했다. 궁의 악사 대 악사로써 재회했고, 빠르게 통성명했다. 그 즈음이 어찌 된 일인지 현이 제법 나른하고 방탕한 생활을 즐기고 있던 때였는데, 아, 그 쪽이면 당연히 나비의 전문분야니 신나게 데리고 놀러다녔다. 물론 돌이킬 수 없는 수준까지는 두고보지 않았지만. 지금도 기분 내킬 때마다 편하게 같이 유흥을 즐긴다. 워낙 가까운 사이인데다가 같은 장악원 출신인만큼 나비가 간헐적인 분노를 종종 터트리는 것을 목격하는 사람 중 한명인데, 그 때마다 "아, 또 시작이네." 하고 대수롭잖게 넘어가준다. 그럼 나비도 실컷 화를 풀고온 후 산뜻하게, "죄송합니다. 조금 시끄러웠죠? 창고에 큰 벌레가 하나 들어와서." 라고 한다. 시원하다.

 

부유라는 것을 믿기 힘들 정도로 바뀌어버린 모습이었지만, 어쨌거나 반가웠다. 재회의 기쁨과 함께 같은 장악원의 예인으로써 유대감을 나눴다. 자연스럽게 같이 공연을 나서고 연회를 준비하니 만날 일이 잦은 것은 당연했다. 만날 일이 잦다는 것은, 나비가 어떤 사람인지 안다는 것. 부유,아니 위비는 화풀이에 가까운 나비의 신경질에도 화 한번 내지 않고 나긋히 달래주거나, 누가 보기라도 할 새라 주변 사람들을 쫓아주기도 한다. 나비도 오래 지나지 않아 가면을 쓰고 나와선 미안했다고 사과를 하니, 우습지만 둘 사이에 딱히 응어리 진 감정은 없다.

 

 

[ 안화(천유) ] "천유님. 저희 어디서 본 적 있지 않나요?"

입궁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어딘가 익숙한 느낌의 문관과 마주쳤다. 저 쪽도 어쩐지 미묘한 태도로 나를 대하는 것 같고, 드문드문 뒷목을 당기는 직감이 분명 예사롭지가 않은데. 정작 소개받은 이름은 생전 처음 들어보는데다가 본인은 나비를 만나본 적 없다며 딱 잘라 말하니, 뭐라 더 할 말은 없다. 그래도 그 단순 "알 수 없는 기분" 때문에 꾸준히 천유의 주변을 알짱거리고 살갑게 굴었더니 지금은 나름 친해진 것 같다. 천유가 나비의 가면을 보더니 혹 남는 가면 있냐며 넌지시 부탁을 하길래, 제일 잘 어울리는 걸로 손수 골라 선물도 해 줬다. 그건 그렇고, 저희 어디서 본 것 같지 않나요?

 

 

[ 사마 후 ] "당신은 왜... ... ....아닙니다. 사마후님."

궁에 초청받았다. 목숨만큼 중요한 공연을 화려하게 끝냈다. 가쁜 숨을 겨우 진정시키고 무대 밑으로 내려와 적당히 가식적인 미소를 지어주고 있는데, 익숙한 낯에 익숙한 목소리, 그리고 낯선 분위기의 사내가 말을 걸어왔다. 그 사내가 후라는 것을 알았을 때, 놀라움보다 앞서는 감정은. "왜?" 왜 이렇게 변한거지? 후는 딱히 더 이상 나비를 싫어하는 것 같지 않았다. 예전처럼 혈기가 넘치지도 않았다. 마주한 눈에 심어진 것은 불꽃이 아니라 얼음과도 같았다. 넌 나에게 바라는 게 뭐냐고 물었고, 나는 사실 바라는 게 있었어. 하지만 지금의 너에게는 전혀 기대하지 못할 것 같아. 씁쓸한 기운을 누르고 오늘도 태연하게 서로를 마주한다.

 

 

[ 낙랑(호렵) ] "이런, 이쯤되면 고의 아니십니까?"

연회가 끝나고 찾아온 사람이 있었다. 제 아는 사람이 나비의 이야기를 해 주었다고. 그래서 누군가 한 번 보자, 했더니. 바로 그 나비가 맞았다는 것이다. 반가운 마음에 그 날은 같이 밤새 술잔을 기울이며 재회를 즐겼는데, 같은 왈패단 출신인 만큼 적당히 이야기도 잘 통했고, 술 취향도 무난하니 괜찮았고, 사람 고르는 취향도 비슷했다. 낙랑이 눈 여겨보던 여인이 사실 이미 나비와 한바탕 노닌 관계였다던가, 이모저모 연을 이으면 퍽 괜찮겠다싶어 작업을 걸었더니 이미 낙랑의 곁에서 가장 밝게 웃던 여인이였다던가. 한 두번 겹치는 일이 아니다보니 슬슬 웃기기까지 했다. 그래도 그런 걸로 마음 상하시기엔, 제 연주가 더 좋으시죠?

 

 

[ 은 ] "뭘 바라냐는 질문보단, 고맙다는 대답이 먼저 아니겠습니까."

우연히 궁에서 마주쳤다. 여전히 눈치가 빠르고, 조심스럽고, 똑똑하구나 생각했다. 그리고 출세욕도. 그걸 돕는 건 나비에게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종종 친한 귀족들에게 가서 제가 아는 사람중에 일처리가 괜찮은 궁인이 있는데 한 번 맡겨보시는 게 어떠냐, 하는 식으로 간단한 언질을 줘 은을 소개해준다거나. 안 되면 안 되는 거고, 되면 은에게 좋은거고. 그저 사소한 호의를 베푼 것이지만 은 입장에서야 부담스러울 수는 있겠구나 생각은 했다. 어쩐지 왜 이렇게 잘해주나 의심하는 것 같기도 하고. 옛정이든, 흥미이던. 서로 나쁠 건 없으니 얌전히 관계를 이어나가고 있다.

River Of No Return - (End Roll Version) - Red Cliff Soundtr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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